그녀는 방에 누군가 한 명 더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어디에 숨어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곳은 그녀의 개인 식당이었다. 네모반듯한 방은 넓고 높았고, 손으로 직접 짠 화려한 양탄자는 바닥에 꼭 들어맞았다. 방안엔 베개와 쿠션이 겹겹이 쌓인 소파와 1인용 식탁만 놓여 있었다. 벽 한쪽엔 오아시스의 풍경을 담은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었고, 정원사가 매일 꺾어오는 장미들이 손재주 좋은 시녀의 손을 거쳐 방 전체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식당에서 ‘부모’와 함께 식사하고 싶지 않을 때면 늘 이곳으로 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천장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부채꽃 모양으로 조각된 열댓 개의 창문들이 천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채광과 통풍을 위해 설치됐지만 지금은 그녀를 암살하려 드는 자들의 출입구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러려면 3, 4층 높이의 건물을 타고 올라와야만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지만. 어쩌면 암살자는 쿠션 아래에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저 태피스트리 뒤에 숨어 있을지도.
답답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이런 일에 맞닥뜨려야 한다니.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선생님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자객이 숨어 있는 곳을 찾기보다 느긋하게 낚싯대를 던져놓고 기다리는 게 나았다. 어쩔 때는 발 벗고 나서는 것보다 더 큰 수확을 얻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고 일인용 식탁 앞에 앉았다. 시녀장은 직접 음식을 조금씩 맛보며 독이 들었는지 확인했다. 세숫대야만한 크기의 은쟁반 위에는 밀전병, 로스트 치킨, 삶은 완두콩과 롤빵이 담겨 있었다. 그 옆엔 금테를 두른 찻주전자와 잘 끓인 차가 담긴 찻잔이 놓였다.
“맛있게 드세요, 아가씨.”
인간 시녀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방을 떠났다. 그러나 살기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틀리기 시작한 속을 꾹 눌러 참았다. 그리고 겨우 손을 뻗어 아침 식사를 뒤적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비수가 어두운 곳에서 날아들었다. 그녀는 진작부터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던 덕분에 비수가 반사하는 빛을 손쉽게 포착해냈다. 하지만 너무 긴장했기 때문인지 동작이 쓸데없이 컸다. 은쟁반을 뒤집어엎어 비수를 막아냈지만, 자신의 시야마저 가리고 말았다.
은쟁반이 떨어져 내림과 동시에 암살자가 쿠션 속에서 뛰쳐나왔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품이 넉넉한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어느 가문에서 보낸 자인지도 알아낼 수 없었다.
“침입자다!”
그녀는 있는 힘껏 소리친 다음, 식탁 위에 나뒹굴던 나이프, 그녀가 유일하게 쓸 수 있는 무기를 집어 들었다. 암살자가 단 한 명이라고 판단하자마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상대방을 향해 달려들었다. 암살자를 엎어쳐버릴 생각이었다.
암살자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돌진에도 놀라지 않은 것처럼 신속하게 대처했다. 그녀가 자신의 손에 들린 무기를 내치자마자, 암살자는 살짝 몸을 굽히면서 새로운 단도를 품속에서 꺼내 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팔뚝을 쳐내는 동시에 명치를 향해 단도를 찔러 넣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뒤로 몸을 던져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식탁에 부딪히면서 일부러 몸을 뒤집었고, 꼬리를 이용해 균형을 유지했다. 그녀는 두 발을 걷어차면서 뛰쳐 올라 자객의 단검을 피해냈다. 그와 함께 꼬리를 휘둘러 엄청난 힘으로 자객을 내려쳤다. 꼬리에 얻어맞은 자객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자객이 발을 놀리며 다시금 공격을 시도하려는 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시녀장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고함을 내질렀다. 암살자는 그제야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긴장하여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두 사람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암살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은 합격이다.”
그 말에 그녀는 겨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완전히 녹초가 된 그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홀가분한 얼굴로 땀을 닦아내었다. 암살자는 머리를 감싸고 있던 두건을 풀어내며 얼굴을 조금 드러내었다. 그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검은색 마스크가 얼굴 반절을 가리고 있었고, 냉혹한 눈빛엔 친근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