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왕국에서의 삶은 이제 좀 적응이 됐나, 레이저?”
두 그림자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레이저는 석양이 길게 늘어뜨린 두 그림자 사이에 서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거쳐 들어온 빛이 비스듬히 방을 비췄다. 두 도마뱀 일족의 얼굴이 후광에 가려져 흐릿하게 보였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은 대칭을 이룬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막왕국이든 태양왕국이든, 살아가는 덴 어디든 별 차이 없습니다.
“그럴 리가요? 분명히 다른 게 있을 텐데요.”
그림자 중 하나가 간드러진 웃음을 터뜨렸다.
“굳이 말씀드려야 한다면, 사실 하나 있긴 합니다.”
“그래요?”
“이곳의 환경이 더욱 가혹합니다.”
“뭐, 그렇지. 인간의 왕국은 어딜 가든 푸른 초원이 있고, 강물은 마르지 않으며, 토지 또한 기름지다고 들었네. 햇살마저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
다른 그림자가 나직이 말했다.
“그게 바로 다른 점입니다.”
레이저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겉과 속이 한결같은 사막왕국과 다르기 때문에, 인간은 남들을 기만하는 재능이 더욱 뛰어납니다.”
”이것 참, 정말이지….“
두 사람은 쉬익 소리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자네 말이 맞네. 기만에 능한 것도 역시 능력이지. 그래서 우리도 자네의 그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이번 전쟁도 지지부진하게 5년이나 이어지고 있잖은가. 이젠 다른 전략을 시도해볼 시기인 것 같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주님.”
“오해하지 말게, 레이저. 우리도 홧김에 자네를 찾은 게 아닐세. 지난 몇 년간 우린 자네의 실력을 주목해왔다네. 이미 계획은 궤도에 올라섰고, 자네 역시 우리 후안 가에 적극 협조해주고 있으니,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손을 잡은 것이라고 확신한다네.”
레이저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어렴풋한 미소만을 머금었다.
쓸데없이 더 나서봤자 오히려 두 사람의 의심을 살 뿐이다.
자신은 자진해서 도마뱀 일족의 군대에 입대한 인간 탈영병이다. 게다가 동족인 인간 병사들에게 칼을 들이밀고, 국왕마저 암살하면서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런 카멜레온 같은 자가 갑자기 돌변해 자기 가족마저 해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후안 가의 가주 내외 역시 자신을 초청하기 전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이미 후안 가문에 머문 지 반년이 넘었지만, 부부는 여전히 같은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었다.
”어찌 됐건, 이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되리라 믿네.“
그림자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절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진심을 담아 말했다.
“두 분은 제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제 지위도, 절 향한 믿음까지도 말입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맡겨주신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자신을 더욱 낮출수록 두 사람은 만족할 것이다. 레이저의 예상대로, 부부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속이려면 3할의 진실로 7할의 거짓말을 포장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온전한 진실보다도 더 쉽게 남을 설득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는 분명히 목숨을 바치길 바랐다. 하지만 그가 누구를 향해 고개를 숙일지가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