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줄곧 ‘3호’를 자기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노예상인이 자신을 그렇게 불렀을 때부터 그녀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 다행히
도 노예상인의 캐러벤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했지만, 소녀에겐 그 이름 말고는 아
무것도 없었다. 그저 더러운 뒷골목에서 구차하게 삶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녀는 시장 한구석에서 엎드린 채 하루 종일 구걸하며 살았다. 가끔 노점상 주
인이 한눈 판 사이 갓 구운 밀전병을 훔치기도 했고 늙은 도마뱀들과 도박을 벌
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하루 종일 굶었고 운이 좋아야 동전 몇 푼 벌었다. 하지
만 그녀는 그런 삶을 원망하지 않았다. 철이 들 때부터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거리에 사는 대다수의 빈민들도 그렇게 살아가니까.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아 살아가라. 절도와 구걸은 잘못된 게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그렇게 가르쳤다.
소녀는 그렇게 몇 년을 살아남았다. 어느 날 도마뱀 일족 몇몇이 나타나기 전까
지. 그들은 그녀를 어딘가로 끌고 갔다. 노예로 팔아치우려는 게 아니었다. 그들
은 오히려 그녀를 커다란 저택으로 데려가 시녀들의 손에 맡겼다. 시녀들은 소녀
를 깨끗하게 씻긴 뒤 부드러운 비단으로 지은 옷까지 입혀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자기의 인생을 뒤바꿔줄 부부를 만났다.
“진짜 똑 닮았어.”
소녀를 본 부부는 숨을 들이켰다. 그들은 자기 딸을 떠올리며 한참 비교하더니
이를 마지못해 인정했다.
“뭘 닮았다구요?”
소녀는 눈을 껌뻑였다.
잉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니?”
“3호에요.”
“3호라고?”
“내 이름을 물어봤잖아요.”
“그건 이름이 아니야.”
크무트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건 번호일 뿐이지.”
“번호요?”
“글은 배운 적 있니?”
잉겐은 자신이 알고 싶은 것만 계속해서 물어보고 있었다.
“아뇨. 번호가 뭐에요?”
“한참을 가르쳐야겠는데요, 우리 예상 이상으로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요.”
잉겐은 소녀의 말을 무시한 채 낮은 목소리로 남편에게 속삭였다.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다.
“닮았으면 그만이오. 저 아이를 가르칠 사람을 구해봐야겠구려.”
크무트는 계속 소녀를 훑어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옷은 마음에 드느냐, 아이야?”
“그럭저럭요.”
소녀는 옷이 불편했다. 입고 있으면 뛰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쉽게 더러워질 것
같았다.
“음식들은 어떠니?”
“좋아요.”
이번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가 쓸 침대도 있단다.”
“침대요?”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되물었다.
“건초 더미 말인가요? 이웃집에도 있었는데. 저도 가끔 거기서 몰래 자봤어요.”
크무트가 설명해주려는 순간, 잉겐이 끼어들었다.
“너한테 부탁할 게 있단다, 얘야.”
소녀는 그제서야 무서워졌다. 눈 앞의 사람들과 이 화려한 집은 너무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이곳은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햇빛이 들지 않는 골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물과 악취로 가득 찬 소
굴로, 그리고 그런 곳에 어울리는, 오물을 묻히고 악취를 풍기는 거지 무리 사이
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