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만 간신히 붙어 있던 놈은 레이저에게 뼈가 부러진 것인지, 손조차 들어 올

리지 못했다. 놈은 날카로운 이를 갈며 차갑게 말했다.

“왕위 계승자 후보도 얼마 안 남았잖아. 찍어보시지.”

“3호, 찔러.”

“어……어디를요?”

“아무데나 찌르라고 하지 않았나?”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아무렇게나 창을 찔렀다. 그리고 들려오는 고통어린

비명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나쁘지 않군.”

레이저는 웃는 것인지 아닌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숙이고 계속해서 놈

을 위협했다.

“어때? 세실리아? 앤드류? 누구의 이름을 댈지 생각이 났나?”

“선생님…….”

“3호, 계속해.”

그녀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러나 손은 순순히 명령을 따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놈에게서 비명소리 외엔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다. 고문은 비

명이 끊길 때까지 이어졌다.

잠시 후, 레이저는 떠보듯 도마뱀 일족을 살펴보았다.

“죽었군.”

“제가 실수한 건가요?”

소녀는 머뭇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네가 창으로 대퇴부에서 심장까지 찔러 넣었다면 모를까. 봐라. 놈의 이가 부서

져 있잖아. 숨겨둔 독약을 삼킨 거다.”

레이저는 계속해서 놈의 시체를 살펴보며 말했다.

“창은 사막에서 만든 물건이로군. 하지만 걸치고 있던 옷엔 인간이 만든 장신구

가 달려 있다. 이 가죽갑옷에도 일부분 태양왕국 양식이 섞여 있고.”

“전리품일까요?”

“어쩌면 보수로 받은 걸지도 모르지.”

레이저는 시체 앞에서 벌떡 일어나 소녀를 돌아보았다.

“아주 잘했다.”

“가……감사합니다……하지만 선생님, 상처가……”

레이저가 입은 비늘 갑옷에 커다란 칼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속으로 칼에 베인

상처가 벌어져 보일 정도였다.

“이 정도쯤이야.”

그는 불쾌한 듯 입을 비죽이더니, 두르고 있던 망토를 풀어헤쳤다. 그리고 계속

자신을 지켜보는 소녀를 휙 돌아보며 말했다.

“너……좀 뒤돌아서 있어라. 얼굴이라도 씻던가. 언제까지 보고 있을 셈이냐?”

“아, 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시체와 살인, 몸에 묻은 오물과 레이저의 부상 등으로 머

릿속이 가득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들이 떠오른 탓에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만 같았다. 그러던 도중, 그녀는 레이저가 방금 전에 했던 말, ‘아주 잘했다’라

는 그 말을 떠올리곤 멈칫했다.

생소한 감정이 온몸을 감돌았다. 아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나무에서 물열매 하나를 땄다. 그리고 그 물로 몸에 묻은 먼지와 피를 깨끗이 씻

어냈다. 자신의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더 이상 공포 때문이 아

니었다.

……선생님이 날 인정해준 거야?

ᅳ지난 반년 동안, 레이저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칭찬해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방

금, 그가 자기 입으로 직접 칭찬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