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

“왜 싫다는 거니? 네겐 아무 것도 없잖니. 하지만 우린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줄 수 있단다!”

잉겐이 소리쳤다.

소녀는 갑자기 방금 전 질문이 떠올랐다.

“대체 번호가 뭔데요?”

“……그건 상품 번호란다.”

크무트가 말했다.

“도망쳐서 길거리를 떠돌던 상품이었던 모양이구나.”

“아이 참,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자기가 3호라는데, 그럼 그냥 3호로 불러주면

되죠.”

잉겐은 손을 내저었다. 마치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3호야. 우리 후안 가의 아이가 되어주렴. 여기 있어 주기만 하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가질 수 있어.”

그녀는 눈을 껌뻑이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들이 누구인지, 그

리고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그녀의 삶은 저 사람들의 눈엔 그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일 뿐이었다. 아

무 의미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자기 자신의 이름조차 갖지 못했다. 텅 비어 있

다는 것이 그녀에게 처음으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온몸을 덜덜 떨면서, 지난 십 년 동안의 무의미한 삶을 떠올리

면서 눈물을 흘렸다.

잉겐은 휴우, 한숨을 쉬면서, 크무트의 제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꼭 끌어

안았다.

“우린 네가 필요하단다, 얘야.”
 

그 감촉은 마치 바늘처럼 그녀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어두운 동굴을 파냈고, 따뜻한 포옹으로 그

속을 채워 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잉겐의 목소리가 점점 뒤틀린 메아리로 변질되

어갔다.

“얘야……네가 다이애나 대신 연회에 나선다면……죽을지도 몰라…….”

그녀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면, 넌 더 이상……필요 없단다……감당하

지……”

ᅳ무엇이 더 두려운 일일까. 또 다시 버려지는 것? 아니면 목숨을 잃는 것?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공포에 젖은 채로 잉겐을 꼭 끌어안았다.

온몸으로 그 느낌을 기억하려고 애쓰면서, 영혼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듯한 고

통스럽고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ᅳ제발 버리지 말아주세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킨 그녀는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왼손이 천창을 향해

무력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얀 비단으로 자

아낸 파자마가 식은땀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들러붙었다. 이건 단지 꿈일 뿐이었

다. 하지만 그 끔찍한 심연은 여전히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깨어난 뒤에도 도

저히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녀는 몸부림치다가 푹신한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양탄자 위에 웅크

린 채 거칠게 숨을 내쉬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녀는 새어나오는 감정을 억누

르듯 흐느끼면서 손으로 거칠게 양탄자를 긁어댔다.

“흑…..흐으윽……”

잉겐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그날부터 3호는 교육을 받았고, 지위와 신분을

보장받았으며, 금전이나 의식주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그들은 정말로 무엇

이든 그녀에게 베풀어주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매일 새벽마다 공포에 시달리면서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