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상식 수업을 위해 그녀는 일찍부터 교실에 앉아 기다렸다. 그러나 시녀들

은 그녀보다 더욱 부지런했다. 해가 뜨기 전에 벌써 장미꽃을 모두 새로 교체해

뒀던 것이다. 꽃병 가득 채운 장미뿐만 아니라, 창가에도 꽃다발을 엮어 장식해

두었다. 정확히 수업이 시작할 때쯤 꽃봉오리가 만개하여 은은한 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말이다.

레이저는 늘 그렇듯 교실 구석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녀는 뒤에서 느껴지는 레

이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도마뱀 일족 학자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즉시 그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난 지금 다이애나 아가씨

야. 아가씨는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그녀는 자기를 향

해 그렇게 되뇌었다.

“크무트 님께서 왕실 역사 수업을 다시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정말입니

까?”

하사드는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소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의 도마뱀 얼굴에선

표정을 읽을 순 없었지만, 어조에서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하사드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왕실 역사에 대해 언제 공부하셨지요?”

“기억 안 나는데요.”

그녀는 다이애나에게서 그 문제에 대해 확실히 듣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역사에 대해 숙지하지 못하셨다면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뭐,

상관없겠죠.”

ᅳ다이애나 본인이야, 그런 지식 정도는 진작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이애나의 대역 역할만 맡을 뿐이라면, 그녀가 이런 지식을 배워야 할 필요는

없었다. 말버릇이나 외모만 비슷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다이애나는 3호가 빈

민굴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된 뒤 틈만 나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익혀

왔던 예법 말고도 가장 기초적인 역사나 가문과 관련된 지식도 익히라고 닦달했

다.

다이애나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다이애나가 역사와

문학을 사랑한다는 것은 가문의 하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소녀가 아가씨 대신 다른 귀족들과 만나야 할 때가 온다면, 지금부터 열심히 공

부해두지 않으면 금방 정체가 탄로 나고 말 것이었다.

“어쨌든 왕실 역사를 복습해서 나쁠 건 없죠. 새로 배웠던 지식들을 돌아볼 기회

잖아요.”

그녀는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던 대사를 마치고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아가씨의 말솜씨는 언제 들어도 대단하십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해볼

까요?”

하사드는 의심을 거두며 웃음을 터뜨렸다.

젊은 도마뱀 일족 하사드는 가주가 초빙한 네 번째 교사로, 3호의 수업을 전담

해 맡고 있었다. 그는 학교에 다니고 있던 평민이었다. 신분 차 때문에 귀족 가문

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을 만한 자였다.

하사드는 예법 수업 말고도 신화, 종교, 그리고 각종 가문들의 역사를 가르쳤다.

덕분에 3호는 금세 왕위쟁탈전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하사드는 진짜 다이애나 아가씨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가문에 머무는 도중 몇 번 아가씨 곁을 스쳐 지나간 정도

뿐이었다.

만일 소녀의 신분을 들킨다면……그땐 레이저가 손을 쓸 것이었다.

가주가 일찍이 당부했듯이, 그림자 호위병 계획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안전

했다. 따라서 소녀의 생활을 돌봐줄 극소수의 믿을만한 시종들을 빼면 그 누구도

진실을 알게 둬선 안됐다.

그렇기에 그녀는 최대한 아가씨답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무고한 자가 희생당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물론 하사드는 아직 아무 것도 눈

치 채지 못한 듯,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가르칠 뿐이었다.

귀족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