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
레이저는 엄격한 태도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느려. 그게 아냐. 느려. 다시.”
수련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소녀는 단 한 번도 레이저를 만족시키지 못
했다.
수업이 끝난 뒤부터 그녀는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 전투 훈련 도중에도 원래
의 스피드를 전혀 내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저는 더욱 엄격한 태도를 유지했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소녀를 긴장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도마뱀 일족과 인간 간의 기초능력은 현격한 차이가 존재했다.
피부를 덮은 비늘은 맷집에 단단함을 더해주었고, 순간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힘도 어마어마했으며, 꼬리 덕분에 균형감각 역시 매우 뛰어났다. 또한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소한 변화조차 오감을 동원하여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살기를 포착하거나 날아오는 암기에 반응하는 등의 능력은 인간의 경
우 수년 동안 수련해야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고작 열댓살 먹은 소녀가 반년 만
에 레이저의 암기가 어디서 날아오는지 예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소녀는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던 덕분인지, 훈련을 거듭할수록 빠른
속도로 레이저의 가르침을 흡수하고 있었다. 고작 반년 사이에 그럭저럭 모양이
잡혀갈 정도였다. 레이저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소녀의 성취가 빠르다
는 것을 인정했다. 만약 왕위쟁탈전으로 인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않았다면,
그 역시 소녀를 다그치는 대신 칭찬했을 것이었다.
“선생님…..더 이상은……”
소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움직임도 점점 힘이 빠졌다. 새벽부터 지금껏
한 번도 쉬지 못했기 때문인지, 딱 보더라도 어제보다 체력이 형편없었다. 안색
도 점점 창백하게 질려갔다. 레이저는 봐줄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상태를 보아
하니 더 몰아붙여봤자 몸만 상하게 만들 꼴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훈련 종
료를 뜻하는 손동작을 내저었다.
“잠깐 쉬거라.”
“감사합니다, 선생님……”
소녀는 바닥에 털썩 쓰러진 뒤 미친 듯이 헐떡였다.
레이저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번화한 마을과 조금 떨어져 있는 후
안 가의 영지는 비교적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은 대부분 사막이
라 다른 건물들은 거의 없었고, 가문에서 심은 물열매나무(沙树水球) 숲이 감싸
고 있었다. 물열매 덕분에 저택은 오아시스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도 물이 풍
부했고, 그 물로 각종 작물들을 재배하고 있어서 저택의 풍경은 녹음이 우거져
있었다.
소녀는 비틀대며 물열매나무 앞으로 걸어갔다. 나무는 이파리가 없고, 사람 팔
뚝만한 두께의 줄기는 돌처럼 단단했다. 나뭇가지 끝엔 고운 모래가 공처럼 뭉쳐
져 있었는데, 그 위로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이 휘감겨 있었다. 그 물을 취하는 방
법은 도마뱀 일족만이 알고 있었다. 소녀가 물주머니로 열매를 감쌌다. 그 상태
로 잠깐 놔두자 모래들이 가라앉았다. 두 사람은 번갈아 목을 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