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가문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소녀였지만, 이렇게 성대한 연회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드넓은 홀엔 도마뱀 일족 귀빈들이 앉을 푹신한 소파와 쿠션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성대하게 차려진 요리들은 손님들이 언제든지 집어먹기 쉽도록 소반과 양탄자 위에 놓였다. 시종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음식을 채워 넣었다. 혹시라도 접시가 비워지기라도 한다면 가주가 손님들을 후하게 대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듣기 십상이었다.
소녀는 자줏빛 피부가 더욱 돋보이도록 하늘색 드레스를 걸치고, 각기 다른 농도로 염색된 푸른색 시폰을 여러 겹 둘렀다. 의도적으로 노출된 목엔 심플한 디자인의 분홍색 보석 목걸이를 걸쳤다. 그러나 보석은 거의 손바닥 절반만 할 정도로 커서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튀어나와 있었다.
“아가씨, 마음에 드세요?”
소녀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녀는 시녀들 앞에서 자기가 놀랐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스스로도 자신이란 걸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달라보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하사드가 말했듯 의복은 계급의 차이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자아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화려한 의복을 걸친 순간, 마치 진짜 다이애나가 자신의 몸 위에 덮어씌워진 듯했다. 그녀는 또 한 번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목걸이는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몸단장을 도와주던 다른 시녀가 끼어들었다.
“작은 보석목걸이는 여기 있는 게 다인데……다 너무 수수하잖아. 이걸론 아가씨의 존재감을 살리지 못할 거야.”
“존재감이 너무 커도 반발심을 살 걸요? 손님들 중엔 아직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도 있어요. 그분들을 자극하는 꼴이 될지도 몰라요.”
“존재감이 확실해야 우리 후안 가문을 지지하지. 난 지금 이대로가 좋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절충안으로 아가씨께 더 잘 어울릴 이 자수정은 어떨까요……?”
“안 돼, 가주님께서 목을 덮으면 안 된다고 분부하셨잖아. 이건 큐빅 달린 술 장식이 목을 가린다구.”
그녀는 얼굴을 찌푸린 채 두 시녀가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었다. 거울 속의 자신과 탁자에 놓인 십수 개의 보석 목걸이를 계속 번갈아 살펴보았다. 시녀들은 왜 고작 목걸이를 갖고 이렇게 오랫동안 옥신각신하고 있는 걸까.
“난 이게 제일 맘에 드는데.”
그녀는 목걸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눈에 쏙 들어왔지만, 시선을 빼앗을 정도로 화려하진 않은 목걸이였다.
“그 보석은 너무 싸구려에요, 아가씨”
시녀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가 어째서 그걸 골랐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유력한 상인들 말고도, 왕위 쟁탈전에 참가하길 포기한 귀족 분들도 연회에 오시는 걸요. 싸구려 보석을 하고 가시면 그분들은 금방 눈치 챌 거예요.”
“음……. 그럼 어쩔 수 없지.”
소녀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길 포기했다. 그러고도 시녀들은 5분이나 더 논쟁을 나누더니, 결국 지금 목걸이를 계속 차고 있기로 결정했다.
바깥에서는 연회가 한창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꼭두새벽부터 손님들이 몰려들어서 점심 즈음이 되자 벌써 20여 개 가문들의 대표가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고, 가주 내외가 그들을 직접 맞이하는 중이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간단했다. 오찬 시간에 잠시 얼굴을 비추기만 하면 끝이었다. 굳이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었고, 그냥 오찬을 즐기고 자리를 뜨면 됐다. 그 다음 순서로는 오후에 열리는 무도회와 만찬 등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 끊임없이 오락거리가 준비되어 있었지만……그녀는 하루 종일 계속되는 연회 도중, 가주의 허가가 떨어지면 손님들 앞에 나와서 형식적인 환영사만 읊으면 끝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환영사를 되뇌면서, 그리고 아무 때나 꺼내도 좋을 안전한 대화 소재를 생각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지금 이 긴장감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남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두려운 걸까, 아니면 단순히 높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무서운 걸까. 그녀는 스스로도 어느 쪽인지 확실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