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흐 가의 가주, 어떻게 당신이! 아버님께선 당신을 믿고 가문 지위까지 인정해주었는데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르다뇨! 당신이 저지른 짓을 아버님께서 밝혀내시면 당신을 죽일 거예요!”
그는 배를 잡고 고개를 치켜든 채 박장대소를 했다.
“내가 왜? 난 처음부터 끝까지 얌전하게 연회를 즐기고 있었을 뿐인데. 아가씨는 내가 범인으로 지목될 거 같기라도 하나?”
“……아니요.”
그녀는 순간 진심으로 절망에 빠졌다.
“그래서 날……죽일 건가요?”
수흐 가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의 가치에 달려 있지.”
“내 가치라고요……?”
“다이애나, 누군가 아가씨의 목숨을 샀어.”
우람한 도마뱀의 표정이 갑자기 일변했다. 잔학무도해 보이는 얼굴에 갑자기 계산적인 눈빛이 맴돌았다.
“처음에 그쪽에서 제시한 돈은 위험을 감수하기 충분했지. 하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군. 후안 가의 귀한 딸내미의 가치가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인가?”
창백하게 질린 소녀는 그 말을 잠시 곱씹다 놀라서 소리쳤다.
“그쪽에 흥정을 할 생각인가요?”
“시도해볼만 하지. 아가씨를 며칠 더 살려둔다고 손해가 될 것도 아니고.”
“그럼 누가, 대체 누가 제 목숨을 산 거죠?”
“왕위계승자일 수도 있고 왕위계승자의 부모일 수도 있지. 아니면 후보자에게 빌붙어 훗날 정계에서 콩고물을 주워 먹으려는 간신배일수도? 그런데 아가씨가 굳이 그걸 알아야 하나?”
소녀는 눈을 감은 채,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을 부추길 수 있는 자라고 해봐야 많지 않을 테죠.”
“그렇지. 그럼 계속 용의자 명단을 줄여보게나. 잘 있게.”
수흐 가의 가주는 소녀를 칭찬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잠깐만요……. 당신이 원하는 게 돈 뿐이라면, 우리 부모님께도 알리세요.”
“왜 그래야 하지?”
“그분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소녀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억지로 용기를 내려는 것이었다.
“날 생포해놓고 의뢰자와 흥정을 할 생각이라면, 아예 경매를 열지 그래요?”
멈칫.
그가 고개를 돌려 소녀를 돌아보았다. 거대한 몸이 철장으로 새어드는 햇빛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흉악한 눈빛은 마치 예리한 칼날처럼 소녀의 몸을 내찔렀다. 질식할 것만 같은 침묵이 지나간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아침은 뭘 먹고 싶다고 했지?”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이 너무 뜬금없어서 소녀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말하지 않을 생각인가? 그럼 대충 고기나 좀 준비해놓으라고 해야겠군. 이제 그만 눈이라도 좀 붙여야겠어. 연회장을 떠난 뒤로 하루 종일 마차를 몰았더니 피곤해죽겠단 말이지.”
그는 뒤통수를 부여잡고 크게 하품을 한 뒤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
“잠깐만요, 아직 대답을 못 들었…….”
“후안 가를 떠나자마자 그렇게 했어.”
수흐 가의 가주가 손을 내저으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이면 아가씨네 아버지는 내가 곱게 써서 보낸 협박문을 받게 될 거야. 정말 똑똑하군, 다이애나……. 너무 똑똑해서 내가 다 안타까울 지경이야.”
소녀는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을 내려다보는 그 시선은 이미 절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그때 잠시 할리파 가주를 보러 갈 마음이 들었을 뿐이었지만, 수흐 가의 가주는 그 순간 즉시 판단을 내렸다. 진작부터 다이애나를 납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듯, 반응도 빨랐고 수법도 대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토록 치밀한 자라면 도망칠 기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충격이 가시고 나니, 그녀는 오히려 이 모든 일이 다이애나가 아니라 자기에게 벌어져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크무트는 협박문을 받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분명 이 기회를 이용해 역으로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할 것이다. 아니면 이 상태로 다이애나를 왕위 쟁탈전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숨겨두려고 할 수도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이번 전쟁은 여전히 후안 가문에게 유리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똑똑한 자는 절대 남을 위해 기꺼이 희생양을 자처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녀는 죽음이 임박해온 순간에도, 후안 가를 어떻게 도울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는 멍청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