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소녀는 화원에서 열리는 해질 무렵의 행사로 향했다. 정오의 오찬 때와는 달리 손님들은 화원에 모여 있었다. 곳곳에 향이 피워 오르고 악사들이 노래를 연주하는 가운데, 그들은 담화를 나누면서 아름답게 꾸며진 화원의 경치를 감상했다. 지위가 낮은 수행원들이나 시종들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다른 홀이나 화원 외곽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화원은 저택 내부에서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식으로 반쯤 개방된 공간이었다. 이곳은 후안 가문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귀빈들을 대접할 장소를 제공하는 곳임과 동시에 가문의 지위를 드러내는 공간이기도 했다. 오아시스 특유의 부요함과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화원 내부를 순환하며 흐르는 인공하천을 조성해두었고, 그 옆으로 각종 열대나무들과 관목, 꽃들을 심어두었다. 또한 치밀하게 설계된 고리 형태의 강물과 산책로는 마치 긴 뱀이 몸을 뒤틀며 물과 생명을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잉겐은 사뭇 자랑스러운 어조로 이곳을 ‘뱀신께서 거하시는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게 허영심에서 비롯된 말인지, 아니면 정말로 열정적인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때, 소녀는 잉겐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 곁엔 유력한 가문의 여귀족들과 상인들의 아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남녀가 자연스럽게 나뉘어 모임을 가졌는데, 남자들 쪽은 늘 그렇듯 거칠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오갔다. 소녀는 그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을 지으려 노력했다.
부인들은 끝도 없이 수다를 떨었다. 내용은 유행하는 드레스와 보석, 사업, 그리고 반려들에 대한 원망 등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게 다이애나 아가씨 본인이었어도 부인들 사이에 녹아들 순 없었을 것 같았다. 지루해서 살짝 졸 뻔한 순간, 한 부인이 잘 관리한 자신의 비늘을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동시에 완곡한 어조로 다이애나에게 비늘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꺼내놓았다. 소녀의 비늘에 난 수많은 흠집들 때문이었다.
그 주제는 어쩐지 잉겐의 신경을 긁어놓은 듯했고, 소녀 역시 깜짝 놀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이가 며칠 전에 화원에서 발을 헛디뎠답니다. 화원의 경치를 조금 고칠까 해서 인부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인부들이 바닥에 놔뒀던 작업도구들을 보지 못하는 바람에 이렇게……어휴,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그러다 그녀는 옆에 앉은 소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다이애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손님들 대접하려고 아껴뒀던 허브티를 내오라고 주방장에게 몇 번을 재촉했는데도 아직도 안 나왔지 뭐니? 네가 직접 가서 말해보렴. 이러다 만찬이 열릴 때까지도 안 내올 것 같구나.”
“아, 제가 바로 알아볼게요.”
소녀는 자리를 떴다. 잉겐이 사소한 점을 구실 삼아 소녀를 떠나보내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계속 그 자리에 있다간 의심을 살지도 몰랐다.
소녀는 장갑을 낀 자신의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레이저와 함께 전투 훈련을 하다가 생긴 상처들이었고, 쉽게 감출 수도 없었다. 확실히, 높으신 분의 몸에 이렇게 흉터가 많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보고 수군거리는 것도 그럴법했다.
“따로 시간을 들여서 관리라도 해야 하나…….”
소녀는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면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가씨, 화원 밖으로 나가시려고요?”
시녀 하나가 소녀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달려와 그녀에게 물었다.
“손님들께 대접할 허브티를 아직도 안 내왔거든. 주방에 무슨 일이라도 있니?”
그녀는 고개를 치켜들고는 평상시 다이애나가 싫은 티를 낼 때마다 짓던 표정을 따라했다.
“준비 상태가 이 꼴이면 내가 직접 가봐야 하지 않겠어?”
“죄, 죄송합니다! 주방장님에겐 제가 바로 가서 알릴 테니 아가씨는 쉬고 계세요!”
소녀가 직접 주방에 가보겠단 말을 꺼내자, 시녀는 기겁하면서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주방을 향해 뛰쳐나갔다.
소녀는 뛰어가는 시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죄책감이 느껴졌다. 일단 방에 돌아가서 쉬어야지. 레이저는 진짜 다이애나를 간호하는 중이었다. 아가씨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오후부터 쭉 비밀방에서 아가씨와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한 장소에서 그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어딘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