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가 고개를 돌리자 소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혹시 어딘가 다친 것인지 생각했다.
“괜찮나?”
소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라. 이제 괜찮으니까.”
남자는 소녀를 위로하곤 그녀와 함께 계속 걸어갔다. 하지만 발걸음이 점점 느려져갔다.
“어떻게 절 찾으신 거예요?”
소녀는 눈을 비비며 눈물 자국을 훔친 뒤, 작게 미소지었다.
“네가 남겨둔 표적 덕분이다. 갈림길에서 어떻게든 버리고 갔던 그 목걸이……우연히 그걸 찾아낸 덕분에 네가 어떤 천막과 함께 이동했는지 알아냈지. 그 길을 따라 이동하던 중, 한 인간 노예가 네가 외쳤던 암구어를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네가 있는 곳을 파악할 수 있었다.”
소녀는 자신이 남겼던 흔적들이 진짜로 효과를 발휘할 줄 몰랐다. 샤킬도 그녀가 생각했던 것만큼 눈치가 빠르지 않았던 걸까?
소녀는 자신이 잘 해냈던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전에 물어봐야할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선생님, 이제 어떻게 저택으로 돌아갈 생각이세요?”
레이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굳은 의지가 담긴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눈빛은 처음이었다. 따뜻하면서도 열정적인 눈빛이었다. 소녀는 멍하니 그 눈빛을 바라보았다.
“돌아가고 싶은 거냐?”
레이저는 소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마치 소녀가 도망갈까 두려운 듯했다.
“후안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벙긋거렸다. 혹시 레이저에게 다른 임무가 내려진 걸까?
“뒷일은 신경쓰지 마라. 오늘 밤 떠나기만 하면 되니까. 나와 함께라면 다 괜찮을 거다. 그러니, 더 묻지 마라.”
“선생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예전엔 저한테 다 설명해주셨잖아요…….”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마라.”
남자는 어딘가 답답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돌아가서 죽길 바라는 거냐? 이대로 가다간 넌 절대 왕위쟁탈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지 못할 거다.”
“화……나셨나요?”
무언가 이상했다.
레이저는 그녀를 억지로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한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으려고 들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초조한 기색을 보이며 화를 낸 적도 없었다. 선생님은 어째서 날 후안 가로 데려가지 않으려는 거지? 이토록 중요한 시각에?
“화난 게 아니다. 그저 너와 후안 가에서 소꿉놀이나 하고 있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야. 잠깐 부주의한 사이 네가 그런 일을 겪게 된 건, 내가……”
절박하도록 말을 쏟아내던 레이저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다시 냉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바라던 게 아냐. 그래서 결정했다. 너와 지금 떠나기로.”
뭐라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레이저가 순식간에 무척이나 낯설어보였다. 그의 말투도 평소와는 완전히 달랐다. 한결같이 유지하던 냉정도 잃어버린 듯했다.
“후안 가를 떠난다구요? 저랑 선생님이? 아니면……저 혼자요?”
“네가 안전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 때까지. 그때가 되면 떠날 거다……네가 신경쓸 일은 없어. 내가 다 도와주마.”
레이저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표정은 평소처럼 자신을 엄하게 꾸짖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녀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그게 너무나도 연약하고 무력해보였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3호, 널 도와주고 싶다는 거다.”
너무 이상했다.
이 모든 행동이. 도대체 누가 누굴 도와준다는 거지? 내 눈앞에 있는 게 정말로 선생님이 맞단 말이야?
소녀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입밖으로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손을 내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