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알아낸 거라도 있나?”
도마뱀 여인은 우선 술을 권했다. 한동안 레이저와 쓸데없는 잡담을 몇 마디 나눈 뒤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야민 가의 왕위 후보자인 시드니가 최근 갑자기 급하게 몇몇 사업의 경영권을 털고 나왔어요. 방직 공방이나 증류소 같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업이었지만요.”
“처분 대금은 컸나?”
“흐음, 그게 궁금하신가 보군요……누군가 꽤 괜찮은 가격으로 사갔죠. 어떻게, 오늘은 정말 그런 얘기만 하려고 온 거예요?”
레이저는 미간을 꾹꾹 눌렀다. 여기서 굳이 더 캐물어봤자, 오히려 역효과다.
“미안하군, 요즘 좀 피곤해서.”
“어머, 왜 이러세요? 귀족 나으리를 모시는 게 어떻게 쉽겠어요? 그래도 여기 왔으니, 좀 느긋하게 쉬고 가는 게 어때요?”
그녀는 레이저에게 다시 술 한 잔을 권하면서, 요염한 미소를 슬쩍 흘렸다. 그리고 레이저의 잔에 술을 따랐다.
“먼저 한 잔 하세요. 그래야 계속 얘기할 거예요.”
잔에 담긴 술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퍼졌다. 루비처럼 아름다운 빛깔의 술이었다. 물론 그만큼 그의 지갑을 텅 비게 만들 정도로 비쌌다. 레이저는 내키지 않는 듯이 한 모금 기울였다. 부디 그녀가 꺼낼 정보가 그만한 가치가 있길 빌 뿐이었다.
“누가 경영권을 사갔지?”
그녀는 레이저의 표정을 감상하면서, 꼬리를 살랑여 맑은 소리를 냈다.
“아실지 모르겠네요. 회색 비늘을 가진 상인인데.”
“일프로군…….”
레이저는 그날 연회에 참석한 손님의 명단을 떠올렸다. 할리파의 가주가 싸움에 휘말렸을 때, 그자도 일어서서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다.
“그자가 사들인 거라면 분명히 그럴싸한 거래였겠군.”
“이런 정황들이 진짜로 도움이 되는 거예요? 이해가 안 가네요. 이게 왕위 쟁탈전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레이저는 그녀가 자신을 떠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게 바로 그가 기다리고 있던 바였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겠지? 후안 가의 아가씨께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아……정말요? 안타깝게 됐군요.”
그녀는 몸을 살짝 움츠렸다.
“유괴범들이 후안 가에게 몸값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무척이나 난처한 상황이야. 하지만 나는 그놈들이 우리에게만 돈을 요구한 게 아니라고 의심하고 있지.”
“그렇군요.”
도마뱀 여인은 다시 한 번 술잔을 가득 채웠다.
“오늘따라 검소한 이유가 있었군요?”
“그렇다고 서비스가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리가요, 카멜레온 씨. 뭐가 더 중요한지 알잖아요? 제가 얼마나 당신의 간택을 받길 바라는지 알면서.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이야길 나눠볼ㅡ”
“다른 곳도 찾아가봐야 해. 그러니까 형식적인 작업은 그만해. 당신에겐 안 어울리니.”
레이저는 잔을 내려놓았다. 잔엔 아직도 술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흐응, 당신은 맨날 그런 식으로 거절하더라.”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그제야 조금 집적거리길 멈춘 듯했다.
“평소처럼 말하라니요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사장님이 보고 계신단 말이죠. 평소처럼 발꼬고 담배 피우면서 남자 욕을 할 순 없다구요.”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단가?”
“흐응……내 얼굴도 좀 봐줘요, 레이저. 한 시간만 더 앉아 있다 가요. 안 그러면 사장님이 농땡이 피운다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는 그녀의 애원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벌떡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뭔가 떠오른 듯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참, 이 근처에 내가 알기론 부화소가 있던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하지?”
“아아, 거기 이미 망한 거 아니었어요?”
도마뱀 여인은 반쯤 소파 한쪽에 엎드린 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알고 있다. 길은 아나?”
순간, 도마뱀 여인은 쉬익- 웃음을 터뜨리더니, 가볍게 꼬리에 달린 방울을 흔들었다.
“절 데리고 나갈 아주 좋은 핑계네요? 빨리 일으켜 세워줘요. 같이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