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전우마저 감옥에서 죽은 뒤, 붕괴 일보 직전이었던 정신은 레이저를 움직이게 했다.
ㅡ그는 도망쳐야 했다. 복수해야 했고, 죽여야 했고, 죽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부화소로 달려 들어갔다. 이유는 없었다. 순전히 우연일 뿐이었다. 잔뜩 쌓여 있는 도마뱀 알들을 본 순간, 그는 오직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스스로도 생각지도 못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보모를 죽였다. 제 손으로 알들을 하나씩 하나씩 부쉈다.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그는 온힘을 다했다. 도마뱀 일족의 알은 겉껍질이 무척이나 단단했는데도 손쉽게 부서졌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호한 일념으로 그 모든 것을 행할 행동력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잘 알았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기를 갈망했다. 그건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연민이었을까? 아니면 이 잔혹한 세상에 울분을 표출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그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대답을 도출해낼까 두려웠기에.
그리고 3호는, 마지막으로 남았던 바로 그 알이었다.
그녀가 알을 깨고 나왔을 때, 끈적한 점액에 뒤덮혀 있던 두 눈은 레이저를 바라보았고, 곧바로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거리며 첫 번째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생명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선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레이저는 살짝 놀라 머뭇거렸지만 이내 잔혹함을 되찾았다.
그녀는 좋지 않은 시기에 태어났다. 설령 오늘 레이저의 손에 죽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조만간 다른 자의 손에 죽게 될 것이었고, 아니면 작열하는 모래바람 속에서 목숨을 잃을 것이었다. 그는 아이를 죽이는 게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발버둥쳤다. 아이는 레이저가 부러뜨린 팔로 자신이 처음으로 본 사람을 온 힘을 다해 꽉 붙들고 있었다. 레이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저지른 모든 일이 이 아이의 발버둥 앞에서 그저 유치한 투정에 불과해보였다. 그 필사적인 생존의지가 레이저를 무너뜨렸고, 그의 안에 깊숙이 숨겨져 있던 유약함을 건드리고 말았다.
ㅡ그저 잘 살고 싶었을 뿐인데, 평범한 사람들처럼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어째서 그토록 어려워야 했단 말인가?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그가 줄곧 알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아이를 껴안은 채 통곡했다. 자신의 고통을 가감 없이 토해내면서.
그런데 그때, 아이는 오히려 그의 품을 둥지 삼아 파고들었다. 그의 가슴이 품은 열기에 의지해 냉혹한 세상을 견뎌내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그는 삶의 방향을 찾았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의미를 얻었고, 그저 숨만 쉬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족한 인생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찾아냈다.
그렇기에 자발적으로 다시 감옥에 돌아갔다. 투기장으로 향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죗값을 씻어내고 전쟁포로 신분에서 벗어났다.
그런 뒤엔 마치 정상인처럼 전공을 세우고, 정상인처럼 타인과 교류하며, 정상인처럼……누군가를 마음에 두기도 했다.
그가 전장에서 돌아왔을 때, 소녀는 이미 후안 가에 입양된 뒤였다. 그 사이 3호가 무슨 일을 겪어왔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후안 가주 부부가 자신을 고용한 날, 그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녀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는 소녀가 살아가기를 바랐다. 자신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리고ㅡ
그는 일부러 가주들 앞에서 소녀의 능력을 깎아내렸다. 소녀가 실전에 나서서 암살자들을 맞닥뜨려야할 시기를 미룰 수 있도록.
그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몰래 자객들과 첩자들을 처리했다. 소녀가 위험에 직접 맞닥뜨리지 않도록.
심지어 그는 계속해서 암시를 던지기도 했다. 소녀가 스스로 후안 가를 떠나도록.
소녀는 레이저의 진정한 목적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다이애나를 위해 이 모든 일을 감내하고 있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3호에겐 알리고 싶지 않은 수많은 과거가 있었으니까. 만일 3호가 평범한 소녀였다면, 도저히 레이저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레이저는 소녀가 자신을 이해해주리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오히려 자신이 3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
원래 그는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소녀는 자신을 따라 후안 가를 떠나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소녀가 자신을 이토록 경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