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걱정거리가 많은 듯한 얼굴이네요. 피워보실래요?”
도마뱀 여인은 담배를 들고 있던 손을 내밀었다.
“필요 없어.”
“카멜레온 씨, 그러면 안돼요. 술도 안 좋아해, 여자도 안 건드려, 담배도 안 피워……살인마로 치면 당신처럼 변태 같은 사람도 없을 걸요.”
“대신 돈을 내잖아.”
그는 후드를 다시 쓰면서 여자를 조용히 흘겨봤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돈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구요. 저도 카지노에서 당신이 절 구해주셨기 때문에 지금껏 당신을 도와주고 있는 거잖아요. 어쩔 땐 분명, 돈 이외의 무언가로 만들어지는 관계가 있는 법이에요. 그럴 생각 없어요? 당신의 편집증적인 성격을 고치는데도 도움이 될 거예요.”
“아니. 나한테 있어서 인간관계는 돈처럼 계량 가능한 것일 뿐이다.”
레이저는 고개를 들었다. 협소한 길목 위로 자유롭게 흘러가는 구름들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있지. 만약 내가 돈을 내지 못한다면, 다음에도 당신이 나와 함께 해줄까?”
도마뱀 여인은 애매한 미소를 흘렸다.
“만약 다음이란 게 있다면, 제가 카지노를 영영 떠난 다음이었으면 좋겠네요.”
“방금 전에 당신이 말했었지. 노예상인들은 상품에 번호를 매긴다고.”
레이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도 번호가 있나?”
멈칫.
그녀의 눈빛이 하얀 연무처럼 살짝 흐릿해졌다.
“전…….”
“있나보군.”
후드 아래에서 그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도마뱀 여인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흘러나오려는 아픔을 억지로 눌러 삼키며, 다시 레이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완벽하도록 우아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게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무기인 것처럼.
“그래요, 전 번호를 갖고 있어요. 그것도 하나만이 아니에요. 캐러밴은 노예들을 잡은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요. 암시장에 도착하면, 피부 상태, 미모, 나이를 따져서 새로 번호를 붙이죠. 카지노도 마찬가지에요. 이름 앞에는 무조건 번호가 붙어요. 하지만 그거 아세요? 누군가는 번호가 필요 없는 곳으로도 보내져요. 그곳에선……그 사람들은 살아있다고도 말할 수 없죠.”
“유감이군.”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겉치레는 적당히 하세요. 솔직히 말하면, 전 그때 부서졌던 알들이 부러워요.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떤 세상으로부터 도망쳤는지도 모를 테니까.”
도마뱀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삶이 비참한 이유겠지요. 일단 첫 숨을 쉬게 되면, 어떻게든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요. 우린 다시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녀는 레이저를 바라보았다.
레이저는 그녀의 눈빛에 불편한 듯 입을 열었다.
“그 우연히 살아남은 아이는, 내 생각엔…….”
“그 아인 살아남았을 거예요. 이 길거리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처럼.”
그녀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부랑자들을 흘겨보았다.
“어떤 일그러진 방식으로든,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면서 말이죠.”
“그럼, 번호를 받기 전……원래의 이름은, 찾았나?”
“당신은 버린 카드를 다시 손으로 가져올 수 있나요?”
레이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정말 가야겠어요.”
도마뱀 여인은 담뱃불을 끄면서 말했다.
“또 듣고 싶은 진짜 속마음, 있어요?”
“나중을 위해 남겨두지. 다음 대화 주제로 삼자고.”
그녀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곤, 딸랑거리는 꼬리로 레이저를 가볍게 휘감더니, 아름다운 자태로 느긋하게 카지노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레이저는 도마뱀 여인이 일평생 그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았다. 대부분의 생물들이 그러하듯, 떠도는 삶 대신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서 자신이 잘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는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바로 3호가 그토록 후안 가에 충성을 바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살아있음의 연속인 게 아니라, 그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마치 자신이 3호를 위해 살아가길 갈망하는 것처럼, 어쩌면……3호 역시 자신만의 신기루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
그는 소녀의 의지를 존중하고 싶었기에 지금까지 인내해왔다. 하지만 이대로 나아가다간, 그녀의 무모함이 조만간 문제를 일으킬 것이었다. 그 시간이 찾아오면, 소녀를 향한 레이저의 존중이 여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여전히 주위에 남아 있는 담배 냄새를 맡으며, 또 한 번 마음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