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가 순조롭게 소문을 퍼트리고 있을 무렵, 샤킬의 천막에서는 주변 분위기에 맞지 않게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소리는 모두 샤킬 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는 박장대소하고 고함을 질렀다. 마치 자신의 행적이 알려지든지 말든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계속해서 다이애나를 향해 그녀의 속박을 풀어보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아직도 멀았나, 다이애나? 이미 5분이나 지났다고!”

“좀만……더 기다리……!”

“안돼, 틀렸어. 그 매듭은 그렇게 푸는 게 아니라니까? 내가 가르쳐줬잖아!”

소녀는 화를 내며 반쯤 풀린 매듭과 함께 두 손을 내던졌다.

“샤킬! 날 풀어줄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나한테 매듭 푸는 법을 가르치려는 이유가 뭐예요?”

“재밌잖아.”

땅바닥에 앉은 샤킬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꼬리를 내저었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소녀는 난처한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내가 더 재밌는 거라니까?”

샤킬은 다이애나를 향해 몸을 쭉 내뻗으며 물었다.

“아가씨는 누가 이번 경매에서 이겼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빨리 매듭을 풀면 상으로 가르쳐준다고 했잖아.”

“당연한 거 아닌가요? 분명 우리 부모님께서 몸값을 마련하셨겠죠.”

소녀는 한숨을 내쉬며 거구의 도마뱀 일족을 바라보았다.

“만약 의뢰주가 이겼다면, 지금 당장 절 죽여버리고 내 시체를 그쪽에다 보냈겠죠. 기다릴 필요도 없이.”

샤킬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머리회전이 빠르구만, 아가씨. 그래서 아가씨가 매듭 푸는 걸 보는 게 재밌단 말이지.”

“교섭은 언제 할 생각이죠?”

그녀가 알고 싶은 건 그것뿐이었다.

“내일 오후.”

소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곧 당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네요.”

“그건 어려울 걸.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후안 가에 찾아가 아가씨에게 혼담을 요구할지도 모르잖아?”

“ㅡ뭐라구요?”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머리를 힘껏 내저었다.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건가?

“혼담 말이야 혼담. 아니면 아직도 레이저를 포기하지 못한 건가? 관두라고. 어떤 도마뱀 일족이라도 그놈보단 나을 테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소녀의 작은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옷자락을 와락 움켜쥐며 소리쳤다.

“샤킬, 미쳤어요? 이런 일을 저질렀으면서, 당장 돌아가기만 하면, 부모님께 말해서 당신을ㅡ!”

“아가씨가 날 죽이려 들 거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아가씨를 죽이는 게 낫지 않나? 물론 아가씨네 부모가 몸값을 내긴 했어도, 의뢰주랑 크게 차이나는 돈도 아닌데 말이야.”

샤킬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당신……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 절 위협해서 결혼하기라도 할 생각이에요?”

소녀는 기가 막혔다. 샤킬이 농담을 하는 건지 진심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어떨 것 같나? 처음엔 그저 의뢰에 따라 움직인 것뿐이었다만, 요 며칠 동안 같이 있어보니 갈수록 재밌어서 말이지. 정말 죽여 버렸다면 아쉬울 뻔했어.”

그는 턱을 매만지며 무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럴듯한 변명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예전엔, 뭐랄까……아가씨를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땐 생기라곤 하나도 없는 느낌이었지. 마치 인형 같았달까. 내가 봐도 기운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였지.”

소녀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가 본 것은 진짜 다이애나 아가씨였을 것이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부모의 손에 떠밀려 피비린내 나는 무대 위에 올라선 그녀를.

다이애나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왕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을 테지만, 실제로는 그저 부모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역할에 불과한 게 아닌가? 다이애나도 그 사실을 고민했겠지만, 결국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아니……아니에요…….”

소녀는 일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대신해 가슴아파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내가 겪어왔던 갈등을 절대 이해할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