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ㅡ!”

시드니는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들지 몰랐다는 듯, 경악한 얼굴로 궁수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물열매나무 숲엔 원래 그가 고용했던 궁수들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궁수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검은 망토를 두른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바닥엔 피 묻은 석궁들이 화살이 미리 장전된 채 널려 있었다. 그자는 들고 있던 석궁은 아무렇게 내팽개치곤 곧바로 다른 걸 집어 든 뒤, 누굴 먼저 노릴지 가늠하듯 시드니와 샤킬을 향해 조준했다.

저자는 분명 자신이 고용한 자가 아니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 챈 시드니는 황급히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그를 목표로 삼을 이유가 되고 말았다. 화살이 시드니의 귓가를 스치며 그의 오른쪽 귀를 날려버렸다. 그자는 곧바로 다섯 번째 석궁을 집어 들었다. 비명조차 내지를 틈이 없었다. 시드니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비틀비틀 발걸음을 내딛었다. 메마른 땅에 핏방울을 뚝뚝 흘리며 미친 듯이 내달렸다.

“젠장!”

샤킬은 쥐어짜듯 소리쳤다. 그는 도망치는 시드니 따윈 잊은 채 석궁을 쏴대는 자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레이저·버나드ㅡ!”

샤킬은 모래밭 위를 소리 없이 박차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남자는 바닥에 널린 무기를 집어드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에 찬 장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거대한 육체를 가진 샤킬과 정면대결을 벌일 생각은 없는 듯, 몸을 비틀며 그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했다.

“진정하시지. 나는 후안 가를 대신해 교섭을 하려고 왔으니까.”

레이저는 웃으면서 몸을 숙여 샤킬이 휘두른 비늘 달린 꼬리를 피했다.

남자 도마뱀 일족의 두꺼운 꼬리는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두껍고 단단한 비늘까지 달려 있는 꼬리에 한 대라도 허락했다간 결코 웃어넘길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인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레이저는 뒤로 물러서며 샤킬과 거리를 떼어놓았다.

샤킬은 두 발로 땅을 육중하게 내딛으며 언제든 달려들 수 있도록 몸을 굽혔다. 한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살기등등한 기세로 레이저를 바라보았다.

“네놈 혼자서 후안 가를 대표해 왔다고?”

“물론.”

“돈은?”

샤킬은 실망에 찬 것인지, 아니면 흥분한 것인지 모를 소리를 내질렀다.

“시드니 쪽이 있잖나.”

레이저는 후드를 벗었다. 비웃음 섞인 미소를 띤 얇은 입술이 창백한 얼굴 위에서 똑똑하게 드러났다. 은백색의 칼날이 그의 손에서 마치 물 흐르듯 천천히 움직였다.

“부족한 금액은 그쪽에서 보충하면 되겠지.”

샤킬은 히죽 웃었다.

“웃기지 마라, 카멜레온. 죽으려고 작정하기라고 한 모양이로구나!”

샤킬이 땅을 박차며 레이저를 향해 달려들었다. 샤킬의 힘이 실린 시미터가 허공을 베어 갈랐다. 다시 땅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칼이 레이저를 향해 날아들었다. 도마뱀 일족 특유의 각력으로 땅을 내딛는 직후의 멈칫거림도 없이 곧바로 레이저가 움직인 방향을 놓치지 않고 뒤쫓았다.

레이저는 몇 합이나 샤킬과 칼을 뒤섞었지만 계속 응전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물열매나무 숲에서 샤킬과 숨바꼭질하듯 빙 돌아 따돌린 뒤, 곧장 소녀가 있는 방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