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버나드, 이 빌어먹을 암덩어리 같은 놈……이 나라 어디에서도 네놈을 받아주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구나!”
샤킬은 복부에 난 상처를 움켜쥐었다. 상처가 그리 깊지 않은 것일까. 칼에 찔린 게 큰 영향을 주진 못했는지, 아직도 버틸 만한 것처럼 보였다.
레이저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이할 정도로 초조함이 몰려들었다. 공격을 방해할 암기도 다 써버렸는데도 샤킬은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상처를 입힐수록 놈은 더욱 사나워지는 것 같았다.
사막왕국의 모든 역사는 피로써 쌓아올린 것이었다. 레이저는 샤킬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도마뱀 일족의 우월한 전투력에서 비롯된 자만심이었다.
하지만 레이저는 샤킬의 말에 담긴 의미가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레이저가 자신의 의문을 확인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날쌘 인영 하나가 물열매나무에서 뛰어내려 샤킬을 향해 달려들었다.
몰골이 엉망이 된 소녀가 양팔로 샤킬을 붙든 채, 순식간에 샤킬의 두꺼운 목을 와락 틀어쥐었다.
“선생님! 도와드릴ㅡ꺄악!”
소녀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샤킬이 간단히 몸부림치자 옆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레이저가 깜짝 놀라 소녀를 향해 뛰어갔지만, 소녀는 재빨리 벌떡 일어나 다시 전투 자세를 취했다.
“괘, 괜찮아요!”
“너ㅡ”
샤킬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레이저와 3호에게 앞뒤로 포위당한 형국이었다. 수하들 중 서 있는 자는 하나도 없었고, 모두 근처의 모래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젠장,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소녀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당신 부하들은 이제 싸울 수 없어요. 라흐와 찬드라는 팔뚝을 부러뜨렸고, 아푸는 두 눈을 찔러서 쓰러트렸고, 자디스는 제게…….”
“그놈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샤킬이 멈칫하며 말했다.
“그동안 당신 부하들이 싸울 때의 습관과 약점을 파악해뒀죠.”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쓰러진 부하들을 돌아보는 걸 머뭇거리며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당신이 칼을 휘두르고 난 뒤엔 습관적으로 왼쪽을 본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레이저는 아무 말없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젠장……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아가씨가 정말로 다이애나가 맞나?”
샤킬이 이를 갈면서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는 깊이 숨을 들이키며 자세를 낮췄다. 무기를 들어 올린 그녀는 일부러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게 중요한가요?”
“그래, 그 말대로군. 네놈들을 족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지!”
그는 기가 막힌다는 듯한 태도로 들고 있던 시미터를 내던지더니, 양손의 손톱을 바짝 치켜들었다. 소녀는 서둘러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해 샤킬의 뒤를 막아섰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두꺼운 꼬리가 아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소녀는 재빨리 피했지만, 꼬리 뒤에 연이어 날아온 발차기까지 의식하진 못했다. 얼른 두 손을 들었지만 막아내긴 역부족이었다. 발차기의 위력에 그녀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숨이 턱 막혀서 질식할 지경에 이른 소녀는 순간 온몸이 굳는 듯했다.
땀이 주르륵 흘렀다. 발차기의 위력을 맛본 소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샤킬을 맞상대하긴 어렵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고작 일격에 가까스로 끌어올렸던 투지가 일순간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