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라고요?”
소녀는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그가 어째서 레이저를 언급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몰라요……그건 왜 묻는 거죠?”
“난 그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린다고요? 설마……당신들이 한패라는 건가요?”
소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남자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입꼬리를 지그시 끌어당겼다. 그 순간, 그의 눈빛에서 차가운 기색이 감돌며 소녀를 향해 적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그는 소녀의 오른쪽 팔을 힘껏 꺾었다. 소녀는 다시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에 눈물을 흘렸다.
“밧줄을 주십시오.”
남자는 일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뭘 하려는 거요?”
일프는 캐비닛을 뒤져 밧줄을 찾아냈다.
“아가씨에게 협력할 의지가 있는지 알아보려는 겁니다. 만약 저와 함께하겠다고 한다면, 당신도 아가씨를 어떻게 할지 다시 고려해 주시죠.”
남자는 담담하게 설명한 뒤, 밧줄로 소녀의 팔을 뒤로 묶었다.
“그 말대로 하지.”
일프는 내키지 않은 듯했지만 결국 남자의 제안을 따랐다.
“무슨……대체 무슨 일이란 거예요?”
“다이애나 아가씨. 내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온전히 협력하겠다고 약속한다면, 아가씨를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내주도록 하겠습니다.”
팔런은 어딘가 미안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마치 이 모든 일이 길을 걷다가 실수로 소녀와 부딪혀 쓰러뜨려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재갈.”
그는 다시 일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무슨 목적이요? 제가 뭘 협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소녀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것부터 말해줘요! 레이저와 당신은 대체ㅡ!”
그녀의 말은 재갈 때문에 끊기고 말았다. 입을 가득 채운 이물 때문에 그녀는 그저 다급하게 읍읍대며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합니다. 소동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한 터라.”
남자는 소녀의 머릿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을 다시 가렸다.
남자가 억지로 잡아끌자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인간 두 명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방안의 상황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은 듯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잠입한 것일까? 소대 하나? 아니면 함대 하나? 소녀는 생각을 멈추지 않고, 거친 숨을 내쉬며 인간의 품속에서 발버둥쳤다.
“시장에서 레이저를 목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현재 위치를 확인 중입니다.”
인간 대원은 방안에서 벌어진 상황을 순식간에 파악한 듯, 아무 일 아니라는 팔런의 손짓에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온 건가? 샤킬의 정보가 사실이었나 보군.”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우선 다이애나를 데리고 간다. 뒷정리는 일프에게 맡기고.”
“네.”
‘레이저라고? 그자가 시장에는 대체 왜?’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레이저가 바로 이때 후안 저택에서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레이저는 분명히 소녀가 몰래 저택에서 빠져나왔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아가씨가 직접 그 사실을 덮어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레이저가 다이애나를 버려두고 시장에 온 것은 분명히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었다.
소녀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과 당혹스러운 감정뿐이었다. 소녀는 자신이 납치됐다는 것도 잊은 채 인간 두 명의 손에 사무실 바깥으로 끌려 나갔다. 길거리 밖에서도 아무도 그들을 막아서지도,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소녀가 끌려가는 방향을 아무도 감히 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