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은 일프의 개인 방이었다. 방 내부의 인테리어는 무척이나 고급스러웠다.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수제 양탄자와 태피스트리가 방 전체를 구석구석 장식하고 있었고, 책장과 책상 위에는 두루마리와 외국에서 온 서적이 잔뜩 쌓여 있었다. 드넓은 실내 공간은 동방에서 들여온 병풍으로 나눠져 있었으며 이국적인 장식품들은 무척이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일프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창백한 비늘과 열 손가락 모두 끼운 보석 반지 덕분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오른쪽엔 낯선 도마뱀 일족이 한 명 있었는데, 항구의 사무 처리를 돕는 조수인 것 같았다. 책상 위에 문서를 펼쳐놓고 일프와 무언가를 논의 중이었다.
빛도 소녀를 돕는 모양이었다. 햇살을 마주보고 있어서 그림자가 건물 안쪽으로 비추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머물면 아래쪽의 경비병들에게 들킬지도 몰랐다. 그녀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딱 5분……. 그 정도가 소녀가 지붕에 머물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었다.
소녀는 귀를 바짝 세우고 안쪽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엿들었다. 뭔가 쓸 만한 단서를 찾아내야 할 텐데.
“화물 내역이 기입된 수량과 다르잖나. 어제 장부와 대조해보라고. 금화 23개와 도기 하나가 비었어. 어제 재고 조사를 했던 수부들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게.”
일프는 조수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연회 당일의 우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짜증을 부리면서 책상을 수차례 두들겼다. 저러다가 지팡이로 조수의 머리를 내려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저것이 일프의 진면목일지도 몰랐다.
“또 뭐가 문제인가? 빨리 말해. 시간이 없단 말일세.”
“대장님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만.”
“알고 있네! 하지만 내가 뭘 어쩌겠나? 내 사람이 죽은 거란 말일세. 오히려 이쪽에서 대체 언제쯤 움직이기 시작할거냐고 묻고 싶은 상황이라고.”
일프가 책상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은빛 외투를 털어낸 그는 꼬리로 지팡이를 움켜쥔 뒤 다시 손으로 가져왔다.
“저리 꺼지게. 부축하지 마. 혼자 할 수 있으니까.”
“죄송합니다…….”
“밑지는 장사나 하고 있으려니 개 같군.”
일프는 욕설을 읊조리며 조수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문이 무겁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안쪽에서는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소녀는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런 뒤 손발로 벽을 단단히 붙잡았다. 조용하게 몸을 진자처럼 움직이며 꼬리로 발아래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창문을 밀어젖힌 뒤 일프의 사무실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긴장한 나머지 땀이 흘렀다. 도둑질은 오랜만이라 움직임이 무척이나 어색했다. 혹여나 아래층의 경비병들이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걱정됐다.
책상 앞으로 다가간 소녀는 높게 쌓아올린 문서들과 서신들을 훑어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실망하고 말았다.
샤킬과 관계된 증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대로였다. 그들이 허술하게 증거를 남겨놓았을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되면 소녀는 일프와 샤킬의 계획의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책상 위에 쌓인 문서는 전부 장부와 물류명세서뿐이었다. 그런데 문서들을 살피던 도중 의심스러운 기록 몇 개를 발견했다. 명절 기간에 입항한 상선의 화물 하선내역이었다. 하지만 후안 가에서 배웠던 지식에 따르면, 명절 동안은 평상시와 달리 외국 여행객들의 방문 조건을 완화한다고 들었다. 이에 따라 원활한 선박 이동을 위해 상대적으로 상선 유입을 제한하고 있었고 선박 크기도 제한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일프는 명절 동안 더욱 많은 화물들을 들여왔다. 그것도 모두 대형선박을 통해서.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며칠간의 장부 내역은 무척이나 모호하게 적혀 있었다, 세부내역엔 ‘잡화’라고 쓰여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공백으로 남겨둔 거나 다름없었다. 금화 몇십 개마저 꼼꼼하게 따지는 일프 같은 자가 장부를 이토록 대충 적어두는 걸 허락할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