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을 열자 각종 편지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크기와 목적에 따라 자세하게 분류해놓은 것 같았다. 소녀는 과할 정도로 세세한 정리방식에 살짝 질린 표정을 짓곤 미간을 찌푸리곤, 편지 한 뭉텅이를 집어 들어 하나씩 내용을 읽었다.
어떤 것은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였고, 어떤 것은 상인길드의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편지였으며, 또 어떤 것은 외국에서 보낸 안부 편지도 있었다. 그녀는 읽은 편지들을 아무렇게나 땅에 내던지다가, 가장 최근에 보내온 사적인 편지가 명절 직전에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편지 위로는 밀랍으로 밀봉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밀랍을 쓰는 나라는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태양왕국이었다.
그녀는 편지를 꺼내 읽었다. 편지 내용 대부분은 인사치레에 가까운 내용이었고, 일프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것에 대한 감사인사였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드시 찾아뵙겠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비슷한 내용의 편지가 매달마다 온 것 같았다.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지에 쓰여 있던 그 말에서 묘하게 의심스러운 냄새가 났다. 소녀는 다시 서랍을 뒤져 태양왕국에서 온 다른 편지들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편지엔 두 사람이 거래 상대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상품’에 대한 설명이나 요구 사항 등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는 분명히 정상이 아니었다.
소녀는 머릿속으로 편지를 보낸 자가 누구인지 떠올려봤다. 시기를 따져본다면 그자는 분명 사막왕국에 찾아왔을 것이고, 여전히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명절이 지난 지 벌써 두 달째였다. 진짜로 밀접한 교류를 주고받았던 사이라면, 그 두 달 동안 아무런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을 리가 없다.
즉 그 자가 아직도 왕국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인간이 과연 사막왕국에서 두 달 넘게 머물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지금처럼 전운이 감도는 시기에?
소녀의 머릿속에 심상치 않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 사무실의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소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창문 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등에 꽃병을 얻어맞아 순간 균형을 잃고 말았다.
평범한 호위병이 이토록 재빠르게 반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소녀가 창문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부터 꽃병을 들고 있었을 게 틀림없었다.
소녀의 눈앞이 살짝 흐려졌다. 방금 전의 심상치 않은 예감이 갈수록 커져갔다. 앞으로 자빠지기 직전 꼬리를 휘둘러 창문을 열어젖혔지만, 도망치기도 전에 그자가 책상을 밟으며 뛰어올라 소녀의 꼬리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 엄청난 힘에 소녀는 비명을 내질렀고, 당연히 몸도 가눌 수 없었다.
“꺄악……!”
“여자?”
소녀의 꼬리를 붙잡은 인간 남자가 순간 움찔했지만, 곧 소녀의 비명을 무시해버렸다. 꼬리를 힘껏 잡아당긴 남자는 소녀가 꼼짝하지 못하도록 발로 등을 짓밟았다.
“일프, 아는 자인지 보십시오.”
“내 사무실이!”
순간 일프가 문밖에서 뛰어 들어와 소녀를 향해 소리쳤다.
“뱀신이여 맙소사!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이 빌어먹을 도둑놈이ㅡ!”
일프의 목소리는 남자가 소녀의 머릿수건을 벗긴 순간, 경악에 차 차츰 사그라졌다.
“아는 자입니까?”
인간 남자가 큰 목소리로 되물었다.
“알다마다…….”
창백하게 질린 일프의 얼굴에 살짝 노기가 돌았다. 그는 목소리를 재빨리 죽이고 얼른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리고 경악에 찬 눈으로 인간 발밑에 짓눌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가씨가 어떻게 여기에, 다이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