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를 떠난 두 사람은 레이저가 알고 있는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두 사람 같은 불청객이 익숙한 듯,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곧바로 상처를 처치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레이저의 상처를 꿰맨 뒤 약초로 감쌌고, 소녀의 목덜미엔 연고를 발라주었다.
“―좋아, 다 끝났네. 이제 괜찮을 거야.”
나이든 도마뱀 의사는 눈웃음을 지으며 레이저가 침대에 눕혀둔 소녀에게 말했다. 그는 안심하라는 듯 소녀의 어깨를 탁탁 친 뒤, 남은 붕대와 연고를 정리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침실처럼 보이는 협소한 방이었는데, 벽장 캐비닛엔 각종 의료도구와 희귀한 약초들이 가득했다.
“흉이 남을 수도 있겠소?”
“그럴 리가. 그 점은 안심해도 좋네.”
“감사하오.”
레이저는 침대 맡의 벽에 기댄 채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따끔따끔해요.”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목을 싸맨 붕대를 매만졌다.
“약효 때문에 그런 거니 걱정하지 마시게. 상처에 특효약이야. 레이저에게 물어보라고. 단골손님이니까.”
의사는 히죽 웃었다. 레이저가 쏘아붙이는 힐난의 눈빛은 무시했다.
“옆방에서 약초를 달이던 중이어서 이젠 가봐야겠네. 적당히 쉬다가 후문으로 나가게. 그리고 부탁이니 다음엔 안 봤으면 좋겠군.”
“최대한 노력해보겠소.”
레이저의 진심 따윈 느껴지지 않는 대답에 의사는 조소어린 콧방귀로 대꾸했다.
의사는 방을 나서기 전,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향초에 불을 붙였다. 은은한 꽃향기에 독특한 약냄새가 섞여 있는 향초였다.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피하며 방안 이곳저곳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대화거리가 없어진 탓이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때 우연히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차분하게 다시 생각해보면 방금 전 행동은 확실히 비상식적이었다. 자신들이 바라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던 탓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이었지만 둘 다 그때 일을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위기는 갈수록 어색해져갔다.
한참이나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결국 레이저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원래는 나 혼자 처리하려고 했다.”
“뭘 처리한다는 거예요?”
소녀가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일프와 팔런 말이다.”
레이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으니 내가 직접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다이애나가 먼저 움직여서 널 불구덩이에 밀어 넣을 줄은 몰랐다.”
그게 레이저가 사과한 이유였을까? 소녀는 그런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의 ‘미안하다’라는 말 뒤에 숨겨진 고통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자들과는 무슨 원한이 있었던 거죠?”
분위기를 타서 소녀는 꺼내기 어려웠던 질문을 던졌다.
“일프는 그저 협력자에 불과해. 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지. 하지만 태양왕국 쪽은…….”
“태양왕국은요?”
그는 소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려 캐비닛 안의 약탕기를 바라보았다.
“나는 과거 전장에서 태양왕국의 국왕을 독이 묻은 단검으로 찔러 중독시켰다. 나는 국왕을 쓰러트린 유일한 전사였지만,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도마뱀 일족들은 누구도 그 공적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소녀의 숨이 탁 막혔다.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믿을 수 없었다.
레이저가 왕국 내에서 꽤나 유명인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엄청난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