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손을 잡아주시니까 갑자기……부모님이 떠올라서요.”
남자는 소녀의 대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윽, 하고 주춤했다.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쩔 줄 몰라 하는 감정은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럼 놓아주마.”
레이저는 소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소녀는 깜짝 놀라 손에 힘을 꽉 주어 그가 손을 빼지 못하게 했다.
“전 부모님을 그리워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으니까요……하지만 선생님이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주시니까, 그래서…….”
“나는 널 훈련시키러 온 거다. 그러니 원래는 따뜻하게 대할 필욘 없었어.”
레이저는 냉정하게 소녀의 말을 잘랐다.
“……알아요.”
소녀는 그 말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의 꾸짖음에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저가 보기에 그건 어린 아이가 지을 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가면에 가려진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3호도, 다이애나도, 그 나이대의 아이들답지 않은 애늙은이 같았다.
그래서일까, 레이저는 짜증이 났다.
“발, 아프지 않나?”
레이저는 가볍게 코웃음치며 말했다.
“네?”
소녀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레이저는 순식간에 소녀를 들어서 품에 안았다. 소녀는 깜짝 놀라 새된 비명을 질렀다. 레이저의 품에 안겨 어색하게 몸을 움츠린 소녀의 표정은 경악에 차 있었다.
“저택에 돌아가려면 한참 남았으니 무리하지 마라.”
그의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무척이나 가까이서 들려왔다.
“그리고, 진짜 부모라면 아이의 손을 잡는 대신 안아줄 거다. 지금처럼.”
“그, 그런가요?”
소녀는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레이저도 부모님에게 이렇게 안겨 있었을까?
“그래. 특히 말썽부리다가 가출한 아이를 붙잡았다면 말이다.”
“으윽.”
“흐음, 이 자세라면 가출한 말썽꾸러기 엉덩이를 때리기도 편하겠군.”
“서, 선생님! 또 놀리는 거죠! 제가 그리워 한 건 그런 부모님이 아니라구요! 내려줘요!”
소녀는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레이저의 등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래도 레이저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산들바람과 함께 소녀의 귓가를 간질였다.
소녀는 낯설게 들리는 레이저의 환한 웃음소리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골리고 있는 남자의 표정을 올려다보고 싶었지만, 그의 기분 좋은 품속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텅 비어 있던 마음속의 구멍이 조금씩 채워져 갔다. 가슴이 찌르르 아파올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지금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소녀는 눈을 살짝 감았다. 레이저의 어색한 온기를 조용히 받아들인 소녀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두 사람이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