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등대로 간 거지?”
“자네 주인은 다이애나잖나. 그녀에게 물어야 할 걸 왜 나한테 묻는 건가?”
“흥…….”
“날 믿지 못하는 건가?”
“네놈의 말을 믿느냐 마냐는 상관없어.”
레이저는 그의 말을 부정하며 읊조렸다.
“여기서 네놈을 놔준다면 당장 인간들의 배에 올라타 도망치겠지. 그 뒤론 태양왕국의 비호를 받게 될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네놈에게 들어야 할 대답을 영영 알 수 없게 되겠지.”
“나는 적들과 내통한 적이 없네!”
일프는 숨을 헐떡였다. 불안에 휩싸인 나머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
“도마뱀. 여긴 너와 나 둘뿐이다. 그렇게 연기하느라 애쓸 필요 없다.”
레이저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화물선으로 밀입국시킨 자들이 누군지, 그리고 그놈들이 널 이용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그놈들을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자네……!”
“하지만 그놈들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네놈 이야기나 해보자고. 우리 쪽 아가씨가 등대로 갔다면, 네놈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었던 거지?”
“당연히 시내의 업무를 처리하러 가는 중일세! 그것 말고 뭘 한단 말인가!”
일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자들에게 대신 더러운 일을 시키고, 네놈은 항구 뒷골목을 휘적휘적 거닐고 있었다?”
“헛소리 말게, 인간. 이래봬도 난 왕족이야. 자네가 이곳에서 내게 손을 댔다간 후안 가문도 좋은 꼴을 보긴 힘들 걸세.”
이를 꽉 깨문 일프가 지팡이로 땅을 두들겼다.
“나는 항구를 통해 들어오는 대부분의 물류를 장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방대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네. 그런 나를 죽이는 게 자네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래봤자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겠지. 잘 듣게. 만약 이렇게 날 죽인다면…….”
“좋은 지적이야.”
레이저는 더욱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척이나 솔직한 반응이군. 그러니 나도 솔직하게 대답해주도록 하지. 후안 가의 미래? 내 알 바 아냐. 아니, 네놈들 모두의 미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잘해봤자 권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이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어리석게 욕심을 부리다가 하나씩 죽어 나자빠질 테지.”
“적당히 하게. 욕심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단 말인가? 있다고 해도 그저 제값에 대가를 치르는 것일 뿐이지……말해보게. 대체 어떻게 해야 날 풀어줄 겐가?”
일프는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몰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지팡이 내부엔 독극물을 발라둔 칼날이 숨겨져 있었고, 정확한 각도에 맞춰 힘껏 내찌르면 끝이었다.
그러나 일프가 자신을 노릴 속셈이라는 것을 진작 알아차린 레이저는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는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질문 하나를 할 테니, 정답을 맞히면 놔주지.”
레이저는 히죽 웃었다. 칼날이 살짝 일프의 몸을 눌렀다.
“당신은 그 아이가 다이애나의 대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
“뭐라고?”
일프의 손끝이 순간 멈췄다.
그 찰나의 방심을 틈타 레이저의 칼날이 조용히 일프의 몸뚱이를 파고들었다. 재빠르고 정확한 찌르기였다. 칼을 빼낼 때도 소음 따윈 없었다. “틀렸어.”
레이저는 대뜸 대꾸한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이제 목표는 단 하나였다. 멀리 떨어진 곶의 붉은 바위절벽 위엔 버려진지 오래된 낡은 등대가 있었다. 일프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소녀가 향할 곳은 그곳뿐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